이번에는 다시 바리새인들 중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지 물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두 계명을 말씀하셨다. 하나님 사랑의 계명은 신명기 6장 5절을 인용한 것이고 이웃 사랑의 계명은 레위기 19장 18절을 인용한 것으로서 주님은 온 율법이 이 두 계명으로 요약될 수 있다고 가르치셨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우리의 최고의 가치요 궁극적 목적으로 삼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보다 더 귀한 가치나 더 궁극적인 목적이 존재할 수 없는 분이시다. 만일 내게 그러한 무엇이 존재한다면 그 다른 무엇은 우상이며, 나는 우상숭배에 빠진 것이다. 하나님은 결코 다른 무엇을 위한 수단이 되실 수 없고, 그분 자신이 궁극적인 목적이시다.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계명에 자기사랑이 전제되어 있다는 주장은 성경의 본래 의도와는 한참 동떨어진 현대적 사고방식의 산물일 뿐이다. 주님은 자기를 부인하라고 가르치셨고 바울은 말세의 특징 중 하나로 자기사랑을 들고 있다(딤후 3:2). 이 계명이 가르치는 바는 우리의 본능적인 자기사랑, 즉 자기중심성을 극복하고 이웃을 돌보라는 것이다. 사랑의 이중계명은 율법 전체를 요약한 것이며, 그대로 신약 성도들에게도 적용된다. 나는 하나님을 최고의 가치요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고 있는가? 또 자기중심성을 물리치고 이웃을 돌보려고 하는가?
그 동안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공격을 받기만 하셨던 주님이 이번에는 그들에게 공세를 펼치셨다. 그들은 매번 성경을 근거로 예수님을 곤경에 빠트리려고 했는데, 주님은 그들이 과연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시험하신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으로 온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대표적 메시아 시편 중 하나인 시편 110편에서 다윗은 메시아를 자기의 주로 부르고 있다. 주님은 이 점을 지적하시면서 어떻게 그리스도가 다윗의 주이면서 동시에 다윗의 자손이 될 수 있는지를 그들에게 물으셨다. 그들은 이 질문에 답할 수 없었고 이후로는 더 이상 예수님과 논쟁을 벌이려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다윗의 주이면서 또한 다윗의 자손이기도 한 메시아는 누군가? 그들은 메시아가 단지 다윗과 같은 왕인 줄은 알았어도 하나님의 아들이심은 몰랐다. 더욱이 다윗의 자손인 메시아가 동시에 이사야가 예언한 고난의 종일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은 사람들이 그분을 다윗의 자손으로 부를 때 부인하지는 않으셨지만 스스로는 고난의 종으로 자처하셨다. 나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참으로 아는가? 아니면 내가 만들어놓은 좁은 틀에 끼워 맞추려 하지는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