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천국을 겨자씨에 비유하셨다. 겨자씨는 씨 중에 가장 작은 것이지만 (실제로는 꼭 그렇진 않지만 유대인들은 겨자씨를 가장 작은 것을 나타내는 대표적 상징으로 사용했다) 나중에 다 자라면 새들이 와서 깃들만큼 커다란 식물이 된다. 이 비유의 요점은 천국의 미미한 시작과 거대한 나중의 대조다. 천국운동은 지금 비록 겨자씨처럼 작고 보잘 것 없게 시작하는 것 같지만 후에는 엄청나게 확장되어 온 세상에 영향력을 미칠 것이다. 여기서 나무와 새들의 깃듦이라는 묘사는 구약에 등장하는 상징적 표현들로서 나무는 거대한 제국을, 새들은 그 제국에 기대어 살아가는 나라들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 비유는 하나님의 나라가 온 세상을 품을 만큼 거대한 나라로 성장해 갈 것을 보여준다.
누룩의 비유도 겨자씨의 비유와 같은 요점을 말한다. 가루 서 말은 성인 100명을 먹일 수 있는 양인데 적은 누룩이 그처럼 많은 양의 밀가루를 부풀게 한다는 것이다. 누룩은 성경에서 악의 침투성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종종 쓰이는데 여기서는 (악과는 관계없이) 그 침투성에 초점이 있다. 천국은 마치 누룩이 가루 속에 파고들어 전체를 부풀게 하듯이 세상에 속속 스며들어가 전체를 변화시킬 것이다.
겨자씨의 비유나 누룩의 비유는 둘 다 천국의 미미한 시작과 거대한 나중을 대조해서 보여주는 비유들이다. 천국운동은 예수님과 그의 몇몇 제자들로부터 미미하게 시작했지만 이천 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에 퍼져있는 거대한 나무로 성장했다. 하지만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우리는 우리가 몰랐던 천국의 더욱 엄청난 성장과 영향력을 보게 될 것이다. 지금은 세상이 훨씬 더 강하고 하나님의 통치는 아직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퍼져있는 것 같아도 마지막 날에 우리는 “대저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한 것을 보게 될 것이다(합 2:14). 나는 이러한 천국의 영광을 믿음으로 보는가? 혹시 하나님의 통치가 좌절되는 것 같아 실망하고 낙심하지는 않는가? 내게는 그 천국의 누룩이 어떻게 역사하고 있는가?
주님은 앞에서 비유의 목적을 듣는 사람들로 깨닫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는 창세부터 감추인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비유는 그처럼 양면성을 갖고 있다. 믿음의 사람들에겐 비유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깨닫게 해주는 반면, 복음에 대해 적대적인 사람들에겐 비유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감추는 역할을 한다. 나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깨닫기를 간절히 사모하는가? 주님은 찾는 자들이 찾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복음의 비밀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