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 감춰진 보화의 비유와 값진 진주의 비유는 둘 다 천국의 가치와 그에 상응하는 믿음의 헌신을 보여준다. 천국은 보화와 같고 진주와 같다. 믿음은 바로 이 천국의 가치를 보는 눈이다. 보화는 밭에 감춰져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보화를 보는 사람들이 있다. 또 진주의 비유는 먼저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가 그것을 찾아다니다 만나게 된다는 이야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주를 구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좋은 진주를 찾아다닌다. 뜻하지 않게 밭에 감춰진 보화를 발견하든 좋은 진주를 찾다가 만나든 이들은 모두 천국의 가치를 본 사람들이다. 그리고 천국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를 아는 사람들은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것을 산다. 믿음은 바로 천국의 가치를 보는 이 눈이다. 자기의 소유를 다 파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천국의 가치를 본 사람들에겐 그 점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신들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주님을 좇았다. 사람들이 천국에의 초대에 응하기를 주저하고 천국이 요구하는 헌신(자기의 소유를 다 파는 것)에 질색을 하는 것은 천국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이다. 천국을 소유하는 것은 그 성격상 다른 모든 소유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자 하면서 내 욕심을 고집한다는 것은 어불성설 아닌가?
그물의 비유는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처럼 심판에 대해 가르친다. 천국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다. 그 이유는 믿음이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살후 3:2). 지금은 좋은 고기와 나쁜 고기가 섞여있지만 세상 끝에는 그 둘을 가르는 심판이 있을 것이다. 주님의 통치는 인격적이고 자발적으로 순응해야 하는 것이지 강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주님은 각 사람이 주님의 주재권(Lordship)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통치 안에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하지만 그 기다림에는 끝이 있다.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하지 않는 자들은 마지막 날에 주님의 나라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다.
예수님은 고향사람들에게 배척을 당하셨다. 그들은 주님의 지혜와 능력을 보았지만 자신들이 갖고 있었던 선입견을 끝내 버릴 수 없었다. 그들은 주님을 오직 혈과 육으로만 알았던 것이다. 주님은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집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하는 법이라고 하시면서 그들의 불신으로 인해 그곳에서는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않으셨다. 바울도 회심하기 전에는 주님을 육체대로 (세상적 관점으로) 대했다(고후 5:16). 하지만 그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고 그분에 대한 사고의 혁명적 전환을 체험했다. 나는 그리스도를 어떤 관점으로 대하는가? 나는 그리스도가 진정 어떤 분이신지 확실히 아는가? 그렇다면 그분의 신분에 합당한 대접을 해드리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