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나눔
김현회
세례요한의 죽음 (마 14:1-12)

분봉왕 헤롯은 갈릴리를 다스렸던 헤롯 안티파스로서 그는 이복형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자신의 아내로 취함으로써 형제의 아내를 취하지 못하게 한 율법을 범했다(레 18:16). 요한은 이를 비판했고 그 결과 옥에 갇히게 되었다. 마가는 헤롯이 비록 요한을 옥에 가두기는 했으나 그를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했으며 그의 말을 들을 때에 번민하면서도 달갑게 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막 6:20). 따라서 헤롯이 요한을 죽이고자 했다는 마태의 기록은 더 정확히는 헤롯의 아내 헤로디아의 입장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막 6:19). 하지만 결국 헤롯은 요한을 죽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 그는 요한을 죽인 일에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것이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때 요한이 살아난 것이라고 그가 반응한 것은 그의 불편했던 심기가 드러난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여기서 두 대조적인 삶을 본다. 한쪽은 선지자보다 더 위대한 자라고 예수님의 칭찬을 들었던 요한이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다가 옥에 갇혔고 끝내는 순교했지만 그의 양심은 자유로웠다. 반면에 헤롯은 이 세상에서는 최고의 권좌에 있었지만 어린 여자아이의 말에도 꼼짝 할 수 없었고 자기 양심을 거스르며 살아야 했다. 누가 진정한 권력자인가? 누가 진정한 자유를 누렸는가? 나는 헤롯과 요한 중 어느 쪽 길을 따라가려는가?

2/7/2010 11:39:21 PM

2 개의 의견이...
1.
요한처럼 의를 위해 핍박받다가 순교하는 쪽을 택할 용기가 사실 제게는 없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권력을 휘두르면서 양심에 어긋나는 선택을 하고 그 결과 자기가 죽인 요한이 살아 돌아왔다고 믿고 두려움에 떨어야 했던 헤롯의 길을 택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불의한 죽음을 당하는 편이 불의하게 의인을 죽이는 편보다 천 배, 만 배 더 낫습니다. 의를 위해 핍박받는 일이 비록 두렵지만 의에 주리고 목마르기에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루터처럼 "제가 여기 서 있습니다. 저는 다르게는 행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저를 도우소서"라고 고백하는 그 길을 택하고 싶습니다.
2.
죽을 때까지 두려움 속에서 살았을 헤롯을 생각합니다.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자신의 양심대로 살지 못했던 헤롯이야말로 가장 불쌍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삶의 목적이 없는 어리석은 인간이 저지른 충동적인 살인의 행위를 보면서 로이 헷숀의 글이 떠오릅니다. "나의 목표는 하나님 그분뿐일세 기쁨도 평화도 축복까지도 목표가 될 수 없고 오직 나의 하나님 그분뿐일세" 진리이신 주님만을 바라볼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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