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목사의 나룻배 칼럼
김연아와 마오가 주는 교훈
<사무라이 픽션>이라는 일본 영화가 있다. 쇼군이 하사한 보검을 옮기는 중에 그 일을 맡은 사무라이가 그 검을 훔쳐 달아났다는 오해를 받게 되고 그를 추적하던 사람들이 계속 그의 칼에 쓰러지고 있을 때 초야에 묻혀있던 미조구치 한베이라는 사무라이가 그 일에 휩쓸리면서 그 검을 도로 찾게 된다는 줄거리다. 실상 검을 훔친 것으로 오해받은 사무라이는 검 자체에 대한 욕심은 없었고 미조구치 한베이와 겨뤄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의 소원은 이뤄졌고 그는 패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몸을 낭떠러지 밑 강물에 던지기 전에 이렇게 말한다. “미조구치 한베이, 당신과 겨뤄볼 수 있었다는 것이 내겐 크나 큰 영예였소.”

김연아와 겨뤄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패하고 만 아사다 마오도 승부를 떠나서 이 점을 깨닫기를 바란다. 자신이 진 것이 속상하고 분한 것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최선을 다하고서도 넘을 수 없었던 김연아라는 벽이 전대미문의 선수였다는 것은 얼마나 큰 영예인가? “나”를 빼고 생각해보면, 피겨 스케이팅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수준과 만난 것이 불행이 아니라 오히려 큰 특권임을 알 수 있다. 물론 김연아 역시 아사다 마오에게 고마움을 느껴야한다. 김연아가 아니었다면 마오는 충분히 금메달감이었다. 그런 막강한 마오를 이겼기에 김연아가 더 올라가는 것이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듯 우리는 서로에게 배우고 성장한다. 예술의 관점에서 본다면 중요한 것은 승부가 아니라 완성도다. 일등을 했어도 완성도가 수준미달일 수도 있고, 등수에 관계없이 높은 완성도에 도달할 수도 있다. 참된 영광은 승부가 아닌 완성도에 있다.

한국에서는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하나님 나라엔 등수가 없다. 애초에 비교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가는 것이다. 달란트 비유가 이 점을 보여준다. 주인은 종들에게 각각 다른 달란트를 주셨다. 그리고 주인은 다섯 달란트 받고 다섯 달란트 남긴 종이나 두 달란트 받고 두 달란트 남긴 종을 똑같이 칭찬하신다. 우리는 자신과의 경주에 임하고 있으며 그 경주의 내용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는 것”이다. 기쁜 소식은 이 경주가 끝날 때 우리 모두 완전한 형상에 도달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작품이며, 주님은 완성도 백 프로를 자랑하신다. 그리고 완전한 작품들은 비교가 불가능하다.
3/7/2010 9:55:51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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