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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자
<나는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

 

말씀을 읽고 기도를 하면서도 무언가 답답함이 밀려올 때면 존 스토트의 <나는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를 펼쳐서 읽게 된다. 이 책은 마음만 먹으면 앉은 자리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수 있는 분량이지만 속 내용은 깊고 넓어서 한 장 한 장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어야만 한다. 존 스토트는 분명하면서 냉철한 목소리로 자신이 왜 그리스인이 되었는지를 모두 7장으로 나누어서 성실하고 진실하게 그 해답을 풀어주고 있다.

  

‘나는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에 대한 첫 번째 대답으로 저자는 천국의 사냥개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우리 모두는 살아가면서 자신도 모르게 주님의 찌름을 느끼고 두드림을 들었을 것이다. 삶의 낯선 길에서 소외감과 패배감에 빠져 있을 때, 깊고도 어두운 존재론적 절망감 속에서 허우적거릴 때, 그리고 잘못된 방향으로 돌아설 때마다 주님은 끈질기게 우리를 놓치지 않으려는 다급한 발걸음으로 좇아오신다. 마치 주님은 스코틀랜드 북부에서 잃어버린 양을 찾아다니는 명민하고 지혜로운 사냥개 콜리처럼 말이다. 우리가 주님의 예민한 감각을 피해 도망치고 또 도망칠지라도 주님은 서두르지 않고, 흐트러지지 않는 걸음걸이로, 때로는 장엄한 긴박함으로 가까이 오시고, 두드리시고, 찌르신다. C.S.루이스는 그러한 추적의 느낌을 그의 자전적 글 <예기치 못한 기쁨>에서 비유로 설명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을 쥐를 쫓는 고양이로, 사냥개의 무리로, 존귀한 어부로, 성스러운 체스 선수로. 주님의 쫓김을 진정으로 받아 본 사람은 그에게서 도망치는 것을 멈추고, 그의 말할 수 없는 은혜와 자비에 대한 깊은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 저자는 단도직입적으로 이렇게 대답한다. “예수님의 주장이 진리라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라고. 그렇다면 진리이신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주님은 구약 성경을 성취한 분이시며,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로서 그분과 유일무이한 친밀성을 누리셨으며, 인류에 대해서 예수님은 그들의 구세주이자 심판자가 될 권위를 주장하셨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주님은 스스로 길이요, 빛이요, 부활이요, 생명이요, 진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러한 주님을 향해 돌을 들어 치려했고, 미치광이라고 손가락질하기도 했으며, 어떤 사람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주님을 따랐다.  

 

“제가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을까요?” 저자는 세 번째 대답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입니다” 라고 설명한다. 정말로 주님의 십자가가 아니었다면 결코 하나님을 믿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그는 덧붙여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이 나의 하나님입니다!” 라고 고백한다. 십자가 위의 주님을 생각해 보라. 손과 발에 못이 박히고, 등은 찢어지고, 사지가 뒤틀리고, 이마는 가시에 찔려 피가 흐르고, 입은 바짝 마른 채 목이 타고, 하나님께 버림받아 어둠 속에 던져진 주님,(p73) 그분은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우리가 그러한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지옥과 같은 황폐함을 겪으셨던 것이다.  

 

4장에서는 “사람이 무엇이기에?” 라는 역설적인 인간성을 언급하고 있다. 이 질문은 ‘인간이 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혹은 ‘우리 인간성의 본질은 무엇인가?’ 라는 두 질문으로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성의 본질에 대하여 주님은 한 마디로 ‘악하다’라고 못 박으신다. 즉 악으로 인해 인간은 하나님 보시기에 더럽고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부적합한 존재가 되었던 것이다. 저자는 인간의 악의 범주는 우주적이며, 그 본질상 자기중심적이고, 근원상으로는 내면적이며, 그 효과는 더럽히는 데 있다고 말한다. 나아가서 인간의 역설적인 모습, 적나라한 악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한다. 우리는 가장 고상하고 고결할 수 있는 동시에 가장 천박하고 잔인할 수도 있다고. 또한 우리는 창조적인 동시에 파괴적이고, 사랑하는 동시에 이기적이며, 하나님 같으면서도 짐승 같다고. 그리스도는 바로 인간의 더러움을 씻어 깨끗하게 하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던 것이다.  

 

저자가 그리스도인이 된 다섯 번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가 자유에 이르는 길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받는 것이야말로 자유롭게 되는 첩경이 되는 것이다. 구원은 죄책과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구원은 자신을 압박하는 자기중심성에서의 자유를 말함이다. 구원은 우리를 꼼짝 못하게 하는 두려움에서의 자유이다.(p98-101) 죄책과 심판, 자기중심성, 두려움에서 벗어난 사람은 어리석은 자아에 대한 집착에서 해방되어 하나님과 이웃을 자유롭게 사랑하는 진정한 자유를 갖게 되는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표현은 저자의 다섯 번째의 이유를 한 마디로 요약해서 설명하고 있다. “내가 당신의 것일 때, 나는 비로소 완전한 나 자신이 됩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인간의 열망을 실현시켜 주시고, 우리를 풍성한 삶으로 이끄시는 분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되었노라고 저자는 6장에서 설명한다. 모든 인간들은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근본적인 열망 혹은 갈망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다른 말로 굶주림, 목마름, 내적 공허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인간이 추구하는 열망을 1) 사람들은 초월성을 추구함으로 하나님을 찾고, 2) 의미를 추구함으로 자기 자신을 찾으며, 3) 공동체를 추구함으로 자기 이웃을 찾는다고 요약하고 있다. 즉 사람은 하나님을 추구하고 이웃을 추구하고 자기 자신을 추구하는 존재인 것이다.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하나님과 화해시키기 위해 죽으셨고, 당신의 삶과 죽음을 통해서 우리의 근본적 가치를 보여 주셨고,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고 한 백성이 되게 하셨다. 이렇게 주님은 인간의 보편적 열망을 모두 풀어주신 분이신 것이다.  

 

“나는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 저자는 “가장 위대한 초대” 라는 문장으로 질문에 대한 대답을 마무리 한다. 그리스도의 가장 위대한 초대의 말씀을 들어보자.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마태복음 11:28) 이 말씀 속에서 핵심 문장을 고르라면 “내게로 오너라”일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자 인류의 구세주이며 심판자라고 주장하시는 분이 “내게로 오라”고 손짓하신다. 그뿐 아니라 우리가 그분께로 나아가기만 하면 성취와 자유와 쉼을 주겠다고 하신다. 그러한 분이 주시는 초대장을 어찌 저버릴 수 있을까.  

 

주님은 언제까지나 우리의 대답을 끈질기게 기다리고 기다리신다.

 

 

3/8/2010 2:14:39 PM

3 개의 의견이...
1.
지난 목요일, 토기장이 성경학교에서 로마서 1장부터 8장까지를 복습하면서 존 스토트의 <나는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를 다시 읽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힘이 닿는 대로 요약 정리를 해 보았으나 존 스토트의 분명한 목소리를 제대로 들었는지 걱정이 되네요. 읽을 때마다 언제나 새롭게 다가오는 이 책을 교우님들께 권해 드립니다.
2.
존 스토트 목사님 책을 소개해 주시니 너무 기쁘고 감사합니다. 저는 오래 전에 어느 모임에서 내가 예수님을 믿는 이유를 첫째, 주님이 진리이시기 때문에, 둘째, 내가 죄인이기 때문에 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가장 중요한 이유를 빠트렸었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저를 택하셨고 부르셨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라는 질문을 제 자신에게 던진다면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것이다"라는 바울의 고백 외에 답할 말이 없습니다. 미자 자매님의 좋은 글 감사합니다. <비교할 수 없는 그리스도>에 대한 글은 언제 올리실 건가요?
3.
나의 죄를 대신하시고자, 나의 더러움을 씻어 깨끗하게 하시고자, 나에게 자유 주시고자, 나에게 풍성한삶 주시고자 십자가 지신 그분이 나의 하나님 이십니다! 라고 같이 고백해 봅니다. 좋은책 소개해 주셔서 감사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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