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새인들이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문제로 예수님을 올무에 걸리게 하려다 실패하자 이번에는 사두개인들이 신학적 문제로 주님을 코너에 몰려고 찾아왔다. 사두개인들은 토라, 즉 모세 오경만 믿는 자들로서 영이나 부활, 사후의 세계 등을 믿지 않았다. 그들은 형이 후사가 없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취해서 형을 위해 후사를 남겨야 한다는 율법조항을 가지고 부활의 모순을 지적하려고 했다. 그 율법조항에 따라 일곱 형제가 차례로 한 여인을 아내로 취하게 된다면 부활 때에 그 여인은 누구의 아내가 되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주님은 먼저 그들의 문제의 핵심을 지적하시고 그 후에 그들이 제시한 예가 성립될 수 없음을 설명하셨다.
사두개인들의 문제는 무엇보다도 성경을 모르는 데 있었다. 그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몰랐던 것은 먼저 성경을 몰랐기 때문이다. 주님은 그들이 인정하지 않았던 구약의 다른 부분(예: 이사야 26:19; 단 12:2)을 들어서 부활을 논증하지 않으셨고, 그들이 인정했던 모세 오경 중에서 출애굽기 3:6을 인용하여 답하셨다. 그들은 이 구절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구절이 명백히 가르치는 바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불타는 가시떨기에서 모세를 부르셨을 때 자신을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동사가 현재형이란 사실이다. 하나님은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었다”라고 하지 않으셨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 말씀을 하실 때 하나님 앞에 살아있는 존재들이었다. 그래서 주님은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고 밝히신 것이다.
사두개인들의 또 다른 오해는 부활 후의 상태에 대한 것이었다. 그들은 부활을 현 상태의 연속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부활이 있다면 거기서도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했던 것이다. 하지만 주님은 부활 후에는 우리가 하늘의 천사들처럼 되어서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주님의 이 말씀을 또 반대 극단으로 오해해서 마치 부활 후의 삶은 몸 없이 영혼으로만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몸을 지닐 것이며, 새 하늘 뿐 아니라 새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 주님이 사두개인들에게 성경을 모른다고 책망하신 것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신뢰하고 세밀히 공부해야 함을 배워야 할 것이다. 나는 성경을 아는가? 그리고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아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