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나눔
김현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심 II (마 23:13-22)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위선적 실상을 폭로하시고 그들에 대해 경계하셨던 주님은 이제 그들을 본격적으로 책망하신다. 주님은 이 장에서 일곱 번이나 “화 있을진저”라고 외치시는데, 이는 회개하지 않을 때 그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엄중한 경고다. 먼저 주님은 그들이 천국 문을 닫아놓고 자신들만 천국에 들어가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고 책망하신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음으로써 예수님과 함께 임한 하나님의 통치를 스스로 거부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주님을 믿지 못하도록 방해했다. 그들의 이러한 행동은 사람들의 영원한 운명에 대한 훼방으로서 주님이 다른 곳에서 연자 맷돌을 매고 바다에 빠지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하신 경고의 대상이었다. 그들은 또 사방으로 다니면서 교인 한 사람을 얻으면 자신들보다 더 지옥자식이 되게 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율법의 정신이 아니라 문자만을 중요시했고, 그 결과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율법의 의도를 추구하는 대신 (고르반이 보여주듯) 기술적으로 율법의 요구를 피해가는 자들이었다. 그런 그들의 영향을 받은 자들이 진정한 신앙인이 될 것을 기대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주님의 세 번째 “화 있을진저”는 그들의 맹세 관행을 겨냥하고 있다. 그들은 성전으로 맹세하면 지키지 않아도 되지만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거나, 아니면 제단으로 맹세하면 지키지 않아도 되지만 제단 위의 제물로 맹세하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들이 이렇듯 성전과 성전의 금을 또 제단과 제물을 구분했던 것은 타당한 근거가 있어서나 율법을 더 잘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 마디로 자신들의 맹세를 빠져나가기 위한 방편으로서였다. 이 얼마나 간교한가? 주님은 성전의 금을 거룩케 하는 것은 성전이고 제물을 거룩케 하는 것은 제단임을 지적하시면서 그러한 구분은 무의미하며 그렇게 가르치는 자들은 소경이라고 책망하셨다. 맹세는 자신의 말이나 서원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약속으로서 그 형식에 관계없이 꼭 지켜야 하는 것이다. 주님은 인간의 연약함을 아셨기 때문에 산상수훈에서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가르치셨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자신들의 기묘한 해석을 통해서 율법을 어기지 않으면서도 맹세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그것은 착각이었고 스스로 소경임을 드러낼 뿐이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형식주의적인 경건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온 참된 경건이었다. 진정한 영성은 형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추구한다. 나는 하나님이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시는 분임을 확실히 알고 그분께 참으로 순종하고자 하는가?

3/12/2010 12:37:02 AM

2 개의 의견이...
1.
누군가 나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거나 또는 그릇된 신앙의 길을 간다면 그것처럼 두려운 일은 없습니다. 요즘 실족케 하는 일이 여기저기서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바른 복음을 회복하는 일, 바른 교회상을 추구하는 일, 그리고 무엇보다도 바른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일이 너무 중요함을 느낍니다. 이 일에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책임이 있지만 특히 목회자들의 책임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일이 없도록 참으로 영적으로 깨어있어야겠습니다.
2.
'화가 있으라' '이 위선자들아'라는 주님의 책망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만이 아니라 세속적인 가치관에 물들어 있는 이 시대의 교회들에게 하는 엄중한 경고임을 듣습니다. 주님만이 모든 것의 가치가 되시며 권위이심을 깨닫습니다. 주님의 바른 진리 안에 서서 새로운 가치관으로 빚어져 갈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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