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이 주님께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를 묻자 주님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그들에게는 허락되었지만 다른 사람들, 즉 예수님의 능력을 보고도 믿지 못하고 오히려 표적을 구했던 그런 자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고 답하셨다. 천국의 진리는 비밀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계시로 보여주셔야만 알 수 있는 것으로서 인간이 스스로 이성으로 추론해서 알 수 있는 진리가 아니었다. 주님은 이 귀한 천국의 비밀을 함부로 공개하지 않으신다. 비유로 말씀하심으로써 믿음의 사람들에겐 깨닫게 하시고 불신의 사람들에겐 감추신다. 따라서 비유의 목적은 한편으론 감추고 다른 한편으론 드러내는 것이다.
주님은 믿음의 법칙 중 하나를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있는 자는 더 받아 넉넉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마저 빼앗기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계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이 더욱 많은 진리를 보여주시지만 그렇지 않고 완강하게 거부하는 자들에게는 그들이 이미 깨달은 것조차 간직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주님은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하시면서 이 법칙이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설명하셨다. 이사야가 성전에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환상을 보고 하나님의 보내심에 순종하여 자원했을 때 하나님은 이사야의 청중이 그가 전하는 메시지에 완강히 마음을 닫을 것임을 예고하셨다.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는 무엇보다도 우상숭배였으며, 우상을 좇아가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은 그들이 섬기는 우상을 닮게 하시는 것이었다. 우상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존재였기에 그러한 우상을 섬기는 이스라엘도 마찬가지로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게 될 것이었다. 이스라엘의 운명은 결국 하나님의 이 예언의 말씀대로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이 보내시는 선지자들의 말을 끝내 듣지 않았고 그 결과 그 땅에서 쫓겨나고 말았던 것이다. 이러한 민족적 불신의 현상은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에게서도 그대로 반복되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기적과 능력을 보았지만 깨닫지 못했고 그분의 말씀을 들었건만 알지 못했다. 따라서 주님은 완고하고 강퍅한 마음으로 믿기를 거부하는 자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심으로써 그들이 듣고 깨닫지 못하게 하셨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주님이 처음부터 비유로 말씀하신 것은 아니었음을 주목해야 한다. 청중이 주님의 증거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자 그때부터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었다. 주님이 주도적으로 그들의 마음을 완강하게 만드신 것이 아니고 그들이 스스로 마음을 강퍅하게 먹자 그들을 그 완고한 마음에 내어버려두신 것이었다. 이는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는 말씀을 주님 스스로 실천하신 것이다. 우리도 말씀을 들을 때에 주의해야 한다. 함부로 말씀을 취급하면 우리가 깨달았다고 생각한 것조차 주님은 빼앗아 가신다. 히브리서의 저자가 경고한 대로 우리가 들은 것을 간절히 삼가지 않으면 우리는 그 진리로부터 흘러 떠내려가고 마는 것이다(히 2:1). 나는 어떤 자세로 말씀을 듣는가? 나는 복음의 권위를 존중하는가? 싸구려 상품처럼 팔려고 하지는 않는가?